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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비지니스]“최고급 음식 제값에 사 먹는 문화로 한식 지키겠다”
  • 등록일 : 2018/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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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 2,892
“최상급 재료로 좋은 음식을 만들어 비싸게 팔면 한식도 세계화 될 수 있는데 아무도 그 짓을 안 해.

그래서 내가 시작했지. 돈 좀 못 벌어도 평생을 바칠 가치가 있으니까.” 김영환(68) 벽제외식산업개발 회장의 말이 의미심장했다. 30대 후반에 직장을 나와 지난 30년간 ‘1등 고기’ 하나만 바라보고 벽제외식산업개발을 이끌어온 그다. 국내 최고급 명품 한우 갈비 전문점인 벽제갈비를 비롯해 평양냉면 전문점 봉피양, 갈비구이 전문점 벽제구이로 등의 브랜드로 연 450억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지만 김 회장은 아직도 못 다한 숙제가 있는 양 배가 고프다고 했다.

벽제갈비가 대를 이어 한식 세계화의 첨병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사명에 ‘외식산업개발’을 붙였고, 그 꿈을 장남 김태현(31) 상무와 함께 그려가고 있다.


벽제외식산업개발은 최근 몇 년간 본격적인 가업승계 준비가 이뤄지고 있는 기업이다. 김선화 한국가족기업연구소장의 컨설팅 아래 기업의 핵심 가치 적립, 직원 교육, 브랜딩 등이 진행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업무는 2세 경영인에게 제대로 바통터치를 하는 것. 이는 1986년 문을 연 이래 30년 가까이 최고급 명품 한우 갈비의 명가로 자리 잡은 벽제외식산업개발이 100년 기업으로 나아가기 위한 초석을 닦는 일이다.

벽제외식산업개발의 창업주 김영환 회장과 ‘벽제구이로’ 동부이촌점과 대치점을 운영하고 있는 2세 경영인 김태현 상무를 만나기 위해 타워팰리스에 위치한 벽제갈비 도곡동점을 찾았다. 인테리어에만 18억 원이 들었다는 도곡동점은 고급스러움의 정수를 보여줬다. “음식도 서비스도 최고급으로 제공하고 제 값을 받아 한식의 격을 높이겠다”는 김 회장의 경영 철학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마흔에 뛰어든 외식업, ‘벽제갈비’와 ‘봉피양’을 만들다

김영환 회장은 미식가 집안에서 자랐다. 일제강점기 말에 할아버지께서 큰 회사를 운영해 집안이 꽤 부유했다. 입맛이 유난히 까다로웠던 아버지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음식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먹었다.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무역과 건설 분야에서 10년 일하는 동안에도 그는 회사 내 ‘맛집’ 안내 담당이었다. 대리 월급으로 1970년대 초반에 자가용을 마련해 상사들을 모시고 서울 시내 최고의 음식점들을 찾아다녔을 정도. 그렇게 고급 입맛에 길들여진 그였기에 회사를 그만두고 눈여겨본 분야 역시 외식이었다. 1983년 마흔이 되던 해에 친구와 4500만 원씩 투자해 신촌의 한 갈빗집을 인수했다. 등심 1인분에 5000원이었던 시절 요령도 없이 뛰어든 고깃집 사업은 매달 적자가 났다. 동업하던 친구와의 갈등도 빈번했다. “품질 좋은 한우를 현지에서 구입하자”는 김 회장과 “그냥 외상 되는 동네 정육점에서 사자”로 의견이 나뉘었다. 결국 뜻이 맞지 않았던 친구에게 경영권을 주고 물러났다.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그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나는 더 이상 못하겠으니 네가 대신 맡아서 해 달라”는 것이었다. 적자투성이인 벽제갈비를 떠맡으면서 김 회장은 3가지 원칙을 세웠다. 그것은 ‘외식업을 평생하자’, ‘가장 우수한 품질을 제공하자’, ‘수치 경영 시스템을 구축하자’다.

그는 최상급 한우고기 확보에 무엇보다 공을 들였다. 포천, 동두천 등지에서 좋은 한우고기를 도축한다는 정보를 들으면 무작정 달려가 정육점 주인에게 한우를 달라고 사정했다. 좋은 고기가 있는 곳이라면 전국 어디든 찾아다닌 결과 벽제갈비의 생갈비와 꽃등심구이는 국내 미식가는 물론 해외 언론에까지 알려질 정도로 유명해졌다.

그는 “지금도 매일 경매 시장에서 너무 비싸 팔리지 않는 ‘한우 마블링 No.9’의 최고급 고기를 사는 곳은 벽제갈비와 신라호텔 등 서울 시내 최고급 레스토랑 극히 일부”라고 했다.

“1980~1990년대 삼원가든은 최고의 고깃집이었지요. 1990년대 초반에 이미 우리는 삼원가든보다 더 비싸게 고기를 팔았습니다. 워낙 좋은 고기를 취급하니 버는 돈은 많지 않았지만 품질로 승부한다는 자부심 하나만은 대단했지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고객들도 그 어떤 곳보다 좋은 고기, 맛있는 음식을 제대로 하는 집이라는 걸 인정해주기 시작했습니다.”

벽제갈비 2호점 삼성역점은 인수 당시 4만 원에 불과했던 일일 매출이 두 달 만에 150만 원으로 수직 상승했다. 성공적인 강남 입성을 토대로 매장을 하나둘씩 늘려갈 때 즈음 고기로 유명한 일본 시장이 눈에 들어왔다. 김 회장 부부는 세 살 배기 아들(김태현 상무)을 데리고 고깃집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일본을 숱하게 드나들었고, 유니폼과 그릇, 실내 인테리어까지 벽제갈비의 하드웨어뿐 아니라 소프트웨어도 최고급으로 꾸몄다. 지금도 벽제외식산업개발의 모든 음식점 그릇은 계열사 벽제도예에서 만드는 것을 사용하고 있다.


김 회장은 갈비를 이을 미래 상품으로 평양냉면과 설렁탕을 키워나갔고, 1995년엔 평양냉면 전문화 개발연구소를 설립했다. 서울 5대 평양냉면집 중 하나로 손꼽히는 봉피양 역시 김 회장의 이러한 직관 아래 탄생한 브랜드다. 벽제갈비와 봉피양은 현재 중국에 4개 점포를 두고 있으며, 올해는 일본 회사 미즈호노와 합작해 일본 진출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는 “회사를 만들 때 식당 이름에 웬 산업개발이 들어가냐고 수군거리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멀리 보고 가치관을 지켜왔기에 지금에 이를 수 있었다”며 “어느덧 벽제갈비의 서브 브랜드가 5개 생겼고, 매장 전체 수가 28개에 달하니 처음에 그렸던 청사진이 어느 정도 이뤄진 셈 아니냐”고 했다.

벽제산업개발의 ‘싱크탱크’로 볼 수 있는 명인제도 역시 이곳만의 독특한 문화다. 벽제외식개발에는 한우갈비, 설렁탕, 냉면 분야에 8명의 명인이 있다. 20년 된 명인이 가장 경력이 적다. 평양냉면 명인 김태원 셰프는 무려 64년의 경력을 자랑한다. 이 명인들은 각각 그 아래 후계자들에게 손맛을 전수한다. 20년 넘게 벽제갈비의 음식 맛이 한결같은 비결이다.

“우리는 명인들을 극진히 예우합니다. 최고의 식재료를 주면서 마음대로 뜻을 펼쳐보라고도 하니 이분들도 너무 좋아하죠. 명인들이 만든 표준화된 요리법을 그 밑에서 훈련받는 직원들이 구현해냅니다. 28곳 점포 어딜 가나 맛이 변함없으니 손님들도 믿고 먹습니다. 이렇게 3대, 4대를 이어 벽제의 맛을 지켜나가는 것은 장차 100년 기업으로 가는 데 있어 무척이나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겁니다.”

‘벽제구이로’운영하며 가업승계 초읽기

아버지의 ‘히스토리’를 조용히 듣고 있던 김태현 상무가 입을 열었다. ‘모범생’ 같은 첫 이미지와 달리 그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 속을 꽤나 썩였다고 털어놨다. 벽제갈비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건 용돈이 필요해서였다.

“중학교 3학년 때 냉면부에서 시급 5000원 받고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용돈이 너무 적었거든요. 그러다 스무 살 무렵 카레이싱에 빠졌어요. 대회에 나가 상도 타고 나름대로 잘나갔습니다. 자동차 경주란 게 돈이 많이 들잖아요. 역시 자금이 달려 아버지께 가게 하나만 내달라고 했습니다.”

김 회장은 지하에 위치해 월세가 싼 벽제구이로 이촌동점을 김 상무에게 넘겨줬다. 김 상무는 스물두 살에 처음으로 자신의 브랜드 ‘벽제구이로’를 운영하게 된다. 벽제구이로는 한우의 여러 부위 육을 메뉴화해 한우의 대중화를 표방하는 브랜드다. 막상 닥치고 보니 오기가 생겼다. 요리 외에 모든 것을 다 하며 매장 운영의 A부터 Z까지 익혔다. 이촌동 후미진 골목에 문을 연 99㎡ 규모의 가게에서 그는 월 200만~300만 원의 매출을 올렸다. 그렇게 대치점까지 벽제구이로 매장 2개를 성공으로 이끌었다. 김 상무가 나름의 능력을 입증하자, 김 회장은 장남을 본사로 불러들였다. 그때부터 부자간 갈등이 시작됐다. 하나하나 가르쳐주고 싶어 하는 아버지와 자신의 방식을 고집하는 아들. 서로 다른 사고방식 등 가족기업의 승계 과정에서 흔하게 나타나는 문제들이었다.

“막상 본사에 들어와 보니 회사 상태가 생각보다 탄탄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께서 이뤄놓은 기반이 있으니 10년 정도는 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워낙 경제적인 성공보다는 의미 있는 성공을 강조하시는 분이기에 앞으로 회사 운영이 빠듯해질 거란 불안감도 들었습니다. 이 와중에 인천국제공항, 세종시 등 벽제갈비 매장 수는 계속 늘려가고 있죠. 아버지는 열정이 넘치시는데 되레 저는 너무 겁이 많았어요. 미래를 위한 준비보다는 눈앞의 효율만 좇는 모습이 답답해 보였습니다.”

부자가 선택한 것은 대화였다. 김 회장에게는 기업의 영속을 위해 핵심 가치를 아들에게 이해시키는 것이 급선무였다. 이들의 이야기를 옆에서 듣고 있던 김선화 소장은 “기업 역사가 오랜 일본에서는 창업주가 후계자를 옆에 붙여놓고 반강제로 가업을 가르치는 경우가 많지만 한국의 상황에서는 이렇게 하기가 어렵다”며 “서로 충분한 대화를 통해 가치관의 일치를 이뤄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김 회장은 염려하는 아들을 향해 “나는 천천히 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즉, 멀리 보고 미래에 대한 투자를 하고 있으니, 이를 불필요한 것으로 여기지 말아달라는 이야기였다. 핵심 가치를 지켜가면서 직영점 체제 아래 내실을 다지고 다음 세대엔 가맹사업에 뛰어들어 외형을 확대해나가는 것이 벽제외식산업개발의 도약을 위해 필요하다고 김 회장은 생각한다.

한식을 질을 높여 세계화의 선두에 서는 일은 모든 벽제인의 과제라는 점에 부자는 뜻을 같이했다.

“나는 한우만을 고집해 10여 년 전부터 남들이 말하는 ‘비싼 설렁탕’을 팔고 있어요. 설렁탕은 소머리뼈와 사골로 푹 고아 국물을 내지. 이런 철칙을 지키고 있는 설렁탕집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돕니다. 한식의 세계화를 외치면서 외국으로 나간 외식업체들이 모두 백기를 들고 다시 들어오는 건 결국 퀄리티의 문젭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가격만 싸다면 질 낮은 음식이 허용돼요. 다른 건 몰라도 먹는 것은 돈을 더 내고 질 좋은 음식점에 가는 문화가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겁니다. 선진국은 그렇지 않죠. 벽제는 그런 문화를 만들어내고자 합니다. 이렇게 하면 분명히 돈은 천천히 벌겠지만 오래 살아남는다고 확신해요. 우리 말고는 이 음식의 퀄리티를 높일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자부심이 있어요.”

김 회장은 이 대목에서 목에 핏대를 세웠다. 인터뷰가 끝나고 그는 도곡동점의 별미라는 ‘청미 설렁탕’을 주문했다. 고급 식기에 담겨 나온 설렁탕의 가격은 2만2000원. 오랫동안 끓여낸 뽀얀 국물에 부드러운 한우 수육이 푸짐하게 담겨 있었다. 벽제갈비의 자랑인 저염김치를 곁들이니 맛이 좋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돈을 주고 설렁탕을 사먹을 수 있을까에 대한 물음에는 금방 답할 수 없었다. 아직은 국민 다수에게 좋은 한식을 비싼 돈 주고 사먹는 문화가 낯선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훗날 김영환 회장과 김태현 상무의 꿈이 실현된다면, 우리의 음식 문화나 수준은 훨씬 높아질 것이고, 한국인의 자부심이 깃든 한식은 전 세계인이 즐기는 일반식이 되지 않을까.

이윤경 기자 ramji@hankyung.com

 원 문 출 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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